체력이 국력, 피처폰 UI

Etc 2013. 2. 14. 18:07 |


1. 태초부터 존재했던, 임베디드 시장




작게 보면 피처폰이지만, 크게 봤을 때는 임베디드 시장이 있었다



모바일에는 MP3 가 가장 대표적이었고, MP4 플레이어에도 플래시가 들어갔으며, 스마트폰의 원조격인 PDA 에도 들어갔었다.


(학생 여러분, 얘가 바로 스마트폰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TV 시장이 있었다.

각종 IP TV 의 단말기는 대부분 플래시였고(그 포맷은 vis 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은 스마트 TV에도 들어가고 있다.



아... 공장 자동화에도 들어갔다...



네오엠텔에서 만든 자체 플래시 플레이어 기술도 있었을 정도로,

(자체 플레이어를 가진 다른 회사도 있었지만 널리 알려진게 네오엠텔일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 나라는 플래시 임베디드 시장의 왕국이였다.






2. 중국과 딱히 다를게 없던 대한민국




교보문고 시절 한국 어도비의 플래시 담당은 두명이었다. (한국 어도비의 위치가 강남 교보문고였다)


플렉스 담당이였던, 지금은 NHN 에 계신 옥고수님

모바일 담당이였던, 지금은 맛집 블로거로 있는 보헤 ( 응??? )




어라? 둘로 끝?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도비에게 대한민국이란 불법 복제로 인해 돈이 되지 않는 시장이었기 때문에...



(짱개라고 놀리지만, 중국 욕할게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 레퍼런스도 착실히 번역해주며 우리 나라에 투자한건 다 이유가 있었다.




플렉스, 모바일... 이렇게 어도비의 새로운 성장 동력 두가지가 역동했던 시장이 우리나라였으니깐 말이다...



(당시에는) 모바일에서 아무리 노키아가 1위였다고 하지만... 삼성과 LG의 힘은 잘 알지 않는가?






3. 점점 자라나던 화면 크기, 그리고 UX




핸드폰이 엄지 손가락 만한 화면을 가지고 있던 폴더폰 시절만 해도, 플래시는 작은 컨텐츠부터 시작했었다.


멀티미디어 메일의 애니메이션으로 사용되거나, 대기 화면 정도로 자리했었으니깐...



그러다가 슬슬 피처폰의 화면이 커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무언가 어필할 것이 필요했다.



어쩌면 아이폰 열풍 이전부터 이미 UX 시장이 도래한 것이다.

(다만 몰랐을 뿐이지)



그런데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여러 분야를 적어놨지만, 플래시처럼 UI 개발에 최적화되어 있는 툴이 또 어디 있던가...



대기업은 그 도구로 플래시를 선택했다.







4. 月刊 피처폰




애플의 영향으로 지금이야 1년에 2-3 대가 나올 뿐이지만, 그때는 매달 새로운 핸드폰이 출시됐다.


이것은 정부의 통신 육성정책에 따른 보조금 지급과도 맞물려 있어서 이기도 한데...




(이냥반 노래는 좋기라도 하지...)



아무리 대기업에 사람들이 많다 한들, 매달 쏟아져 나오는 기계의 UI 를 다 만들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한달이면 괜찮지 않냐고? 그냥 한대가 아니라 2-30 개국 언어 별로 개발해야 하는 한대였다...




당연히 일을 외주로 돌리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벤처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회사가 생겨도 부족한 개발자를 채우기에는 힘들었고, 임베디드 시장은 웹 시장과는 다른 것이 버그가 난다고 고쳐서 업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이 아니였다.



게다가 대기업의 하청이란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테스트하려면 당연히 기계가 있어야 하는데, 기계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진이 다 빠져야 보내주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기계가 도착했다고 한들, 출시가 코 앞인데 갑자기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바꿔버리는 경우도 너무나 많고... 

(가장 문제인건 이 인간들이 도대체 컨펌을 안해준다...)



그나마 국내 출시용 핸드폰을 개발하는 거라면 양반이었다.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겠고, 문의 하기에는 말도 잘 안통하는 해외 출시 폰까지 작업을 하려면...

(아랍권만 아니면 그나마 다행... 글자 반대로 쓰는건 이해하겠다만, 오타를 고치고 싶어도 내가 뭘 틀렸는지 알아볼 수도 없다는 것이...)








5. 플래시 대란




어쨌든 시장이 폭발하니 회사가 늘어났고, 부족한 개발자로 인해 발생하는 버그들은 신입들을 뽑아서 무한 QA(Quality Assurance)로 처리하던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이 제대로 될 일이 있겠는가?



몇몇 회사들은 사고를 치기 마련이었고... 그 뒷수습은 다른 하청 회사로 넘어가기 마련이었으며...


그 변을 치우기 위해서 다음 하청 회사는 개발자 들을 굴려야만 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일을 마치고 돈을 받고나면 행복하냐고?



이 냥반아... 매달 새로운 폰이 나온다니까???



(그리고 대기업이 결제를 제때 제때 잘 해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러닝 정도로 힘들다고?)







6. 만류인력의 법칙




그래도 물량이 물밀듯이 쏟아졌으니, 일이 많아서 문제였지 다른 회사와의 경쟁이 문제가 아니였다...


회사들은 계속 생겨나고, 기존의 회사들은 사람들을 마구마구 뽑아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사장들도 바보는 아니기에, 무리한 확장임을 느낀 몇몇 회사는 아예 피처폰용 자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야 나중에 잘못돼도 부담감이 없지 않은가...)




아무리 시장이 존재한다고 한들, 이렇게 내실 없이 팽창만 해온 사업 구조가 제대로 연명될 리가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일이 아닌 하청만을 하면서 말이다.




이러던 와중에 마침 나무에서 사과 하나가 떨어졌다.





똑같은 사과 한 알로 누군가는 만류인력의 법칙을 깨달았지만...



대한 민국에는 다른 의미로 그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여섯번째 글이고 다 다른 분야인데, 왜 계속 똑같은 내용을 적고 있는거 같지?)






7. 플래시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




피처폰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플래시가 가장 몸집을 불렸었던 시기의 플랫폼과 그 이유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끝나자 업체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발 빠르게 스마트폰 쪽으로 넘어간 업체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이것이 플래시 개발자들의 수명까지 보장해주진 않았다.






(급작스런 다이어트는 건강을 해칩니다)






아직도 그 수는 적지만 여전히 피처폰은 나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가장 화려했던 순간 이후의 상대적 박탈감은 가장 크리라...







[뜬다고 한거 같은데? SNG]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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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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